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선교동역자 여러분의 중보기도로 자라고 있는 주연이가 쓴 글을 보내드립니다. 이 글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출판할 책 “선교현장이야기: 선교사자녀(Missionary Kids)”에 실릴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 사역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하나님의 영화 주인공
김주연
만 두 살이 갓 지난 어린 아이가 부모님 손에 한 손씩 붙들리어 한 발짝 한 발짝 낯선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주변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들려오고, 너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이 아이에게 고정된 것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나 칠흑 같은 밤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작은 시골도시를 덮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닭 울음소리에 일어나서 나가려다가 신발 속에 알을 까서 놓은 독거미로 인해 소스라쳤습니다. 작고 어린 여자 아이는 너무나 다른 이 환경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역을 하시는 부모님만 따라 다녔습니다. 면역력도 없어 말라리아와 같은 참으로 많은 풍토병을 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이를 기억하시어 그 마음에 웃음과 미소를 띄워주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골에 있는 양철지붕과 나무로 지어진 학교들은 오전, 오후, 밤 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두울 때 전기가 나가면 글씨를 볼 수 없기에, 비가 오면 집에 물을 받아놔야 하기에, 그리고 선생님들은
제 때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하여 일 년에 많은 날들이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신 부모님은 기도로 결정하셨습니다. 일단 홈스쿨링을 시키시겠다고....
홈스쿨링, 말 그대로
집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집 안에 있는
작은 칠판에는 시간표가 쓰여 있고 그 옆에 시간을 알리는 종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학생은 단 한 명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이신
여자 선생님이 한 교실에서 모든 과목을 가르치십니다. 그 교실이
식당이 되기도 하고, 마루도 되며, 가족 예배를 드리는 곳이고, 사람들이 방문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입니다. 또한 아버지이신 남자 선생님은 특별수업을 담당하시어 기독교 수업과 야외 수업을
해 주십니다. 체육 시간은 밖에서 교회 앞마당을 정리하거나 주일학교에서 뛰노는 것이고, 음악 시간은 교회 찬양시간입니다. 그러다가 물이
들어오면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부모님을 도와 바가지로 물을 나릅니다. 전기가 나가면 그날 수업은 끝이 납니다. 또한 시간표에 있는 현장학습 시간에는 책을 들고 나가서 부모님 사역을 따라다니며 주변에서 공부하다가 가끔씩 작은
심부름을 합니다. 그게 바로 일명 “선교지 홈스쿨링”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와 홈스쿨링의 인연은 그 누구보다 남다릅니다. 혹시나 밤에 전기가 나가면 공부를 할 수 없기에 부모님이 사역 다니실 때 책을 들고 가 주변에 앉아서 그 날 맡겨진
분량을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저 혼자만
걷는 길이라는 외로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부해야
할 때 환경은 따라주지를 않았고, 주어진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아가며 책과 싸움을 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홈스쿨링 덕분에 저는 학교 스케줄에 매이는 대신 융통성 있게 저만의 계획을 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가 끝나갈 무렵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금, 토, 그리고 주일에
무료로 도미니카공화국 복음교단 총회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시는 어머니를 도와 보조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일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사역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입 준비와 함께 주어진 엄청난 공부의 양을 주말 교회 사역과 병행하기 위해 시간 관리를
정말 잘 하여야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대입을 위해 부모님 사역을 돕는 것을 그만하고 공부에만 올인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한 적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게 사역에 동참하게 해 주셔서 다른 이들을 섬기게 해 주셨고 제 안에 말로 형언한 수 없는 기쁨과 매일매일 더 큰 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아시는 미국 선교사님들로부터 추천 받은 M.K.들을 위한 미국 홈스쿨링 프로그램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미국 교육 커리큘럼과 그 과목에 더 익숙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의 정말 유명한 명문 대학에 합격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희 부모님께 늘 말씀하시던, “선교사님, 주연이가 부모님
사역 때문에 희생되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홈스쿨링의 장점인 스케줄의 자율성으로 인해 오히려 부모님 사역을 도울
수 있는 축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제 작은 생각으로는
그것이 가장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 같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고 2 무렵, 대학입시가 더 피부로 와 닿게 되면서부터 미국 대학의 엄청난 등록금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부모님도 한국 대학을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저의 계획과 달라 혼란스러웠지만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기에 받아들이고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입준비와는 또 다르게 준비해야 했고 원서에 관련된 정보도 시작부터 다시 해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 또 다른 설렘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 가고 싶었던 곳, 한국에 가서
제 또래 아이들과 지내며 대학생활을 해 본다는 사실이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 대학에 원서를 넣기 위해 도착한 후,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홈스쿨링을 한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시험을 보게 되면 단순히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동안 공부한 커리큘럼이 전혀 인정이 되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참 많이 고민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분명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계획하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와 같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계획한 “유명한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을 보이고 영광 돌리고 싶다”는 그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막상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한 것은 적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아는 분들을
통해서 미시건에 있는 Calvin College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기독교 대학들 중 제가 관심이 있는 언어학 쪽과 Bilingual
Education (이중 언어 교육학) 등의 전공 프로그램이 매우 유명하고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발판 하나 없었지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에 의지하여 원서를 넣었고, 최우수 입학생 중에 상위 3%에게만 주는
성적 장학금 중 가장 높은 Trustee Scholarship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등학교
성적과 SAT 성적, 자기 소개서와 에세이, 그리고 그
외의 원서에 해당되는 서류들을 바탕으로 주어지는 장학금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SAT 학원도 가지 못하고 공부한 저의 작은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주의 종을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힘들 때마다 눈물로 수없이 간구한 저의 마음 속 소원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두렵고 떨리던 제게 부모님은 여러 가지 당부를 하시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새겨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Calvin College가 단순히
좋은 대학이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를 그 곳에 보내셨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 대학이 좋은 대학이 되는 거란다. 주연이 네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이, 네가 그 곳에 가서 보낼 축복된 시간이 기대된다.” 그 말씀을 들은 후, 저의 두려움과
걱정했던 마음이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이루시고 보이실 일들에 대한 기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Calvin College 자체는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캘빈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선교지에서
혼자 영어 뉴스를 다운받아서 따라해 보고, 회화를 연습하기
위해 혼자 말한 것을 녹음하며, 작은 노트에
써서 들고 다니며 외우던 단어들을 실제 생활에 써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규 과정을 마친 친구들보다 제가 많이 뒤쳐질까 고민했었지만 미국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저와 대화하는
것을 보며 전 조금씩 자신감을 쌓아 갔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간
첫 날, 제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듣고 보던 그런 강의실에 제가 직접 앉아 있다는 게 전혀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닌 다른 미국 친구들과 드디어 직접 겨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교수님께 가서 여쭤보면 되지 굳이 힘들게 속도가 느린 인터넷으로 일일이 찾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강의 시간마다 교수님께 질문하면 바로 답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기뻤습니다. 대학에 와서 그룹으로 하는 활동과 프로젝트를 하며, 서로 도와주고, 문제를 지적하며, 친구들과 제 자신을 비교하고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감사했습니다.
강의 시간 이후의 시간은 매일 새벽 2-3시까지, 그리고 6시에 일어나 과제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몸이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선교지에서
기본적인 여건이 안 되어서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이것은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그 때마다 하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고, 전기와 물도
있으며, 인터넷과 컴퓨터 시설 등 여러 첨단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 무엇보다 그렇게도 원하던 강의를 듣고, 교수님들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이곳은 제가 꿈꾸어 오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서 Calvin College에 저를 보내신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가장 잘 쓰임 받을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기독교적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교수님들 또한 열정적으로 최대한 잘 가르치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많은 M.K.를 포함한
국제 학생들과 함께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학교의 크리스천
프로그램과 많은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신앙 안에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각자의 선교지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민을 하나님 안에서 응원하고, 격려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향수병, 우울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대학 졸업 후 어떤 곳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심이 있는 언어를 선교, 그리고 저와
같은 다른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에 접목하여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 비전을
마음에 품고 현재 English in Linguistics(영어언어학), 서어서문학, 그리고 언어병리&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Youth Ministry Leadership을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여
배워서 나중에 단순히 제 학벌이 아닌 제 자신이 주님 안에서 배운 자가 되어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다녀왔습니다.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자기소개 시간에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 어디에서 왔니?” 이 단순한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 정리하는데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자라나서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여기 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에서 왔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으니...”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습니다. 그렇게 느껴본 적은 많았지만 누구를 통해 들어본 적은 처음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 날 밤, 저는 제가
들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다가 학교에 온 이후 어느 곳이든지 헤엄쳐 갈 수 있도록 절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제게 저희 학교 스페인어 채플과 서어서문학과 Spanish
Department에서 Tutor로 일하게 하셨고 M.K.들을 위한
동아리와 그 외 많은 다문화, International Student 동아리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번 9월부터는 상급생
학생관 Resident Assistant (학생지도조교)로 뽑혀 일하는 축복도 허락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 고등학교 시절
공부와 사역을 병행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노력했던 것이 지금 대학생으로서 공부와 학교 활동, 그리고 많은 일을 병행하는 삶의 선행 연습 기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고 그러다가 파도에 휩쓸려 가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더 저를 일으키시며
여러 방법으로 저에게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바쁜 학교 일상 중 혼자 있는 시간에 문득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삶이 생각이 나면 어떤
때는 그 모든 것이 제가 지나온 길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가거나 도대체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몰라 앞이 캄캄한 것 같아서 방 문 닫고 혼자 책 보다가
운 기억, 정말 어떻게 그 마음을 다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만 수없이
외쳤던 기억, 주변에서 요즘은 공부와 정보력으로 대학 가야 한다며 미리 잘 준비하라고 말씀해
주실 때 진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싶어 고민하며 기도한 시간들이 모두 다 꿈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어 제 앞에 Calvin의 캠퍼스를
보는 순간 이 현실도 꿈만 같습니다. 제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모두 다 꿈과 같이 지나가는 한순간의 인생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모든 건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 그분의 말씀, 그분의 약속만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가슴에 새기며 다시 하루를 힘차게 살아갑니다.
한국은 제 육체적, 저희 부모님으로 인해 얻게 된 제 나라, 제 고향, 제 땅입니다. 그러나 도미니카 공화국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제게 허락하여 주신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시고, 제 마음을 조금 더 정금처럼 단련시키시고, 그분이 사용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하나씩 빚어 가신 그 곳, 그리하여 힘들고 아픈 적도 참 많이 있었지만 주변이 다 꽉 막힌 것 같은 그 때에 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하신
그 곳, 도미니카 공화국은 제게 둘도 없는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미국의 Calvin College에서 제게 또 다른 집을 허락하셔서 이 세상 그 어떤 곳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곳이 제 집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 어떤 곳에도 100% 속하지 않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1%씩 더 속해
갈수록, 또한 하나님께 조금씩 더 제 자신을 내어드리고 의지할수록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불완전한 저를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기억하시어 많은 영역에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제가 주님의 은혜의 손 안에 붙잡힌바 되면 그분의 능력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선교사님이신 부모님과 다르게 선교사 자녀는 직접 부르심을 받아서 가기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부모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자들입니다. 저 또한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공항에서 이민자 가방 위에서 자며 장기간의 여행을 하며 선교사 자녀라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다른 이들은
모르는 복음을 알고 도와줄 수 있는 자가 가장 축복된 자이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부자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교육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사역으로 인해 마음고생은 덜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도 부족했던 선교지의 생활환경으로 육적, 심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직접 하나님께 헌신하기도 전에 저를 미리 택해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얼마나 전적인 하나님의 축복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선교사 자녀로서의
삶은 한편의 스펙터클 한 영화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어떤 때는 다른 이들이 마음 아파하고 또 어떤 때는 부러워하는 그런 인물의
삶을 살아갑니다. 많은 이들의 눈에는 부모님 밑에 있는 조연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 이름 석자, “김.주.연.”이기 이전에 “선교사님 자녀”로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때가 더 많았으니까요. 어릴 때는
평범해 지고 싶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아침에 일어나 책가방 메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싶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나, 염려 걱정이 저를 사로잡을 때도 참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진짜 선생님, 친구는 예수님이시라고....또한 감사하게도 크리스천 신앙에 바탕을 둔 제 홈스쿨링 프로그램 교재를 통해 전 공부하는 동시에 더욱더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록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저를 주인공으로 뽑으신 또 하나의 영화를 찍고 계셨습니다. 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곳들을 가보고 너무 복된 다양한 이들과 교제하며 여러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등 참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면서 보는 그 한 장면, 한 장면이
나오는 과정은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인 생활환경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많은 날 전기, 물 없이 더위와
소음 속에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가장 주인공이신 저의 완벽한 감독님, 예수님으로
인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라는 영화에 오직 이 최고의 감독님이신 예수님만 남기를, 그러나 영원에 한번뿐인 저만의 색깔로 남겨지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제 마음대로의 계획보다 하나님은 순종을 더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단순히 믿고 따를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은 제게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제가
가장 잘 쓰일 수 있는 곳에 보내 주셨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할지 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모든 것을 이미 완벽하게 계획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로 들릴 수 있는 이 사실을 당당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오늘도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 다해 살도록 노력합니다.
Calvin College에 온 이후 처음으로 참 많은 다른 선교사님 자녀들을 만나고 교제하며 한 명 한 명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와는 또 다른 여건들로 인해 각자의 자리에서 참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저희의 그 힘든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저희를 단련시키시고 준비시키시어 감사의 고백이라는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다른 이들은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이야기일지 모르나 하나님은 저희의 힘든 시간들을 감사의 눈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모두 잊지 않으시고 저희들에게는 이 대학,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기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또한 또 다른 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가장 좋은 곳으로 기억하여 보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웃으며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하나님이 택하여 주신 자리, 나는 선교사 자녀입니다!
선교사 : 김종성 목사 / 장은경/ 딸 김주연